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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상처받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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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작성일16-07-12 11:29 조회4,1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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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문제를 호소하는 수많은 기독교인을 만나면서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을 깊이 연구하게 됩니다. 기독교신앙을 가진 이후에 더 큰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게 된 사람, 교회를 갔다오면 더 상처가 심해진다는 사람, 교회를 욕하고 싶은 사람, 같은 교회 다니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사람, 심지어 교회다니는 부모님 때문에 교회 가기 싫다는 사람,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사람...... 

  

 

초대교회 시절, 문제가 있던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면 새사람이 되고 그의 좋은 변화로 인해 뭇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던 사례들을 사도행전을 펴보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처음 복음이 전파되고 예수 믿는다고 고난이 심하던 시절에, 깡패가 변하여 목사가 되던 그 시절에는 기독교인들이 칭송을 받았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독립투사가 되었던 수많은 기독교인들, 사회에 훌륭한 영향력을 끼쳤던 기독교인들로 인해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기독교인들이 참으로 칭송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고, 21세기가 되면서 점점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심한 비난을 받는 시대가 되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기독교인이 되고 싶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기독교인 행세를 하는 가짜들도 섞여 있습니다.)  

  

 

그 모든 원인은 상처입은 기독인의 무의식적 투사 때문임을 다시한번 상기해야 합니다. 교회가면 더 상처받게 된다는 이 아이러니와 역설을 변화시킬 사람이 바로 기독교인인 저와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기독교인인 우리도 비기독교인과 다를 바 없이 한 연약한 인간이고 완벽하지 않은 사람일 뿐입니다. 어떻게 이 연약함과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나’ 때문에 생기는 비난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참 이상하게도 자신의 부모님 이미지가 강하게 투사되어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부모와 동일시하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성경에서 밝히고 있는 이미지와 다르다면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이미지를 투사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당신도 모르게 내면에서 올라오는 오래전 상처가 당신에게 나쁜 이미지가 되어 풍겨져나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아주 무섭고 엄격한 아버지나 어머니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 또한 무섭고 엄격한 분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무서워합니다. 그 내면의 두려움은 밖으로 풍겨져 나와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실은, 그 내면에 무서움과 공포를 가득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아십니까?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두렵게 합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밖으로 표출하기 위해 욱하는 성격으로, 분노를 폭발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우리는 무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분이라고 되어 있는데, 교회를 다니면 다닐수록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면 이것은 분명히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혼날까봐 두려움을 느낍니다. 잘못을 용납받은 적이 없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너무 무섭고 너무 큰 불안에 휩쌓여 어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타인에게도 너그럽지 못합니다. 타인의 못난 모습을 용납해 주지 못합니다. 또한 깊은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아버지에 대한 상처와 충격이 트라우마로 자리잡은 사람은 하나님(God)을 만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전도해도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그런 분에게 이렇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있으신가요? 아버지가 무서운 분이셨나요?” 

  

 

신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누구나, 부모에게 상처를 받을 때 신에게도 상처받는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나의 오랜 임상 결과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래서 원래 신의 존재를 믿지 않던 사람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또다른 상처로 인식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상처를 준 부모는 자신의 행위를 잊어버립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며 키웠다고만 생각합니다. 상처받고 성장한 자녀는 자랄수록 부모에게 사랑받은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고 상처만 크게 자리잡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부모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부모도 자녀에게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고통의 사이클은 계속 됩니다. 상처받은 부모는 자녀에게 심한 노여움을 느끼게 되고 인생의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는 부모도 있습니다. 노여움을 표출하는 부모를 성인이 된 자녀는 견디기 힘들어하고 심지어 부모자식의 연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상처를 속히 치유하지 않으면 비기독교인들에게 더욱 지탄을 받고 욕을 먹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기독교인에 대한 기대치가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생긴 기대치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온 세계에 크나큰 영향력을 끼쳐왔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계속해서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칼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에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인은 비기독교인에 비해 어느 정도는 완벽한 인간일 것이라는 기대감.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안티기독교인이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더욱 위선자가 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합니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겉으로는 애쓰지만 속은 상처로 욱신거리고 있기 때문에 어느 새 위선자처럼 자신을 보게 되고 내면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께 또다른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지금의 모습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용납해주면 불안지수가 내려갈 것입니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쓰지 말고, 내면의 치유에 힘쓰면 저절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선을 싫어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할 것입니다. 위선적 모습은 치유를 가로 막습니다. 치료자인 내앞에서도 위선으로 내면을 가리기 급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치유가 지연됩니다. 두렵기 때문에 위선적이 되고, 위선적이 되기 때문에 또다시 두려워집니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당신 내면의 상처준 부모를 떠나보내야 합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해야 하나님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용납하고 타인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진정으로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그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치유의 끝엔 그 ‘주님’이 당신을 환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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