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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치유1 : '너'와 '나'는 서로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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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작성일16-07-12 11:17 조회3,5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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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치료를 할 때마다 놀라운 기적을 만나게 됩니다. 그 기적은 거의 매일 일어납니다. 날마다 상담실 안의 정경은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가족들이 흘리는 눈물과 웃음과 한숨, 커다란 깨달음의 감탄사 등이 넘치도록 흐르는 감동으로 채색되곤 합니다.  

가족의 문제 속에 스며있는 수많은 갈등과 아픔의 요인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서로의 ‘다름’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아서 생긴 사소한 갈등이 쌓이고 쌓여 너무 큰 덩어리가 되어 마음을 닫게 되고 원수처럼 인식하게 된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외롭고, 고통스럽고,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투사하여 무시당한다는 느낌과 함께 불안해하기 때문입니다. 그 불안의 싹은 점점 안으로 자라나 제크의 콩나무처럼 하늘을 뚫을 듯이 무지막지하게 자라게 됩니다. 이 불안이 가족체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오고가야하는 사랑을 차단합니다. 사랑의 차단은 점점 더 지독하게 불안을 증폭시키고 가족 내에 아주아주 큰 외로움의 공포를 드리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외로움의 공포가 가족 내에 드리워지는 동안 아이들은 외로움 때문에 우울해지고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해 분노가 생깁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의 외로움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분노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부모의 심정을 너무 모른다고 원망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한 시간 내내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며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쏟아내곤 합니다. 그래서 늘 상담실 안에는 아이들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온통 슬픔으로 채색됩니다. 그 슬픔이 기쁨과 행복으로 변하기까지 어른들의 변화보다 훨씬 빨리 오는 것도 보게 됩니다.   

생각보다 지독하게 새겨진 아이들의 상처의 흔적, 그 깊은 아픔을 들여다보며 오래전 치유되었던 내 어린시절의 기억 한자락이 저절로 보였습니다. -음소거된 채, 분노하며 회초리를 들고 소리지르고 있는 무시무시했던 젊은시절의 엄마의 모습이 허공에 떠올랐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어린시절의 그 상처가 얼마나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마는지... 가족과 자신에 대해 얼마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지...

“우리 애가 문제가 있어요. 말을 해도 대꾸도 않고... 아이구, 정말 죽도록 패주고 싶어요. 누굴 닮아 저런지... ”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고 하는 엄마 아빠를 많이 만납니다. 아이의 문제는 부모에 의해 생깁니다. 나도 역시 우리 아이들의 그 어떤 모습에 마음 아파하며 젊은 시절 엄마로서의 지혜가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눈물나도록 미안해하곤 합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불완전한 부모를 가졌으며, 또한 불완전한 부모가 되었습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라는 식이 아니라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배우고 훈련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입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한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배우고 익혀서 훌륭한 부모가 되고, 자녀들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새로운 사랑의 체계를 구축한 가족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용기있고 훌륭하며 위대한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을 내세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면 이 역기능은 결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역기능적 고통을 종료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으로만 충만할 수 있도록 가족체계의 모든 역기능을 풀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가족이 네 명이라면, 네 명의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서로 다른 성향과 취향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성향과 기준을 모든 가족에게 적용하여 강요한다면 갈등은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우선 외향적인 성향인지 내향적인 성향인지, 그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성향에서 오는 갈등부터 짚어 봅니다. 외향형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사람들 속에서 하루종일 있어도 지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되는 성향입니다. 물론 아주 강한 외향형과 조금 약한 외향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강한 외향형의 사람들은 매우 사교적이어서 사람들을 쉽게 사귑니다. 그런데, 하지 않아야 할 말을 너무 앞질러 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거부감을 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내향형의 사람들은 마음속에 넘치도록 가득 말이 쌓여있을지라도 그것을 꺼내놓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말을 해도 될까, 안될까를 너무 오래 생각하다가 말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몹시 외향형의 아빠가 매우 내향적인 자녀에게 뭔가를 물어봐도 말을 잘 하지 않으면, 기다려주기보다는 답답해하면서 핀잔을 주게 되는데, 그럴 때 내향형의 아이들은 더욱 주눅이 들어서 말을 하려고 준비하다가도 마음열기를 급히 철수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감을 잃게 되고 다음부터는 더욱 말하기 힘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성숙해지고 건강해지면 아주 외향형의 다혈질 성향의 사람도 그것이 점점 줄어들어 온유한 성품이 될 수 있습니다. 아주 내향형의 안으로 침잠하는 성향이라도 성숙은 불안없이 말할 수 있는 담대함을 무르익게 하여 자신의 내면을 잘 표현하게 됩니다.  

가족 중에 누가 외향형인지, 누가 내향형인지, 이것만 깊이 살펴봐도 서로를 이해하는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찌하던지, 서로 ‘다름’에서 오는 갈등을 이제는 종결짓고 행복하고 즐거운 가족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혜와 깨달음을 가진 자는 행복합니다-잠언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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