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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경하는 친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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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작성일23-04-29 20:34 조회1,0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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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존경스러운 친구가 있습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늘 말하곤 합니다.

 

"너무 존경스러워."

"본 받고 싶은 사람이야."

 

마약성 진통제를 매일 몇 개씩 먹어야 할 만큼의 통증을 끝도 없이 앓고 있으면서도 친구는 이런 말로 나를 감동시킵니다.

 

"나 행복해."

"너무 행복해."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해."

"모든것이 감사해."

 

고통의 크기가 비슷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늦은 나이에도 절친이 되었습니다.

 

통증이 몰려오는 날이면 친구는 걷기를 시작합니다.

마음의 병인 우울증이 햇빛 아래 걷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듯이,

몸의 통증도 햇빛과 반짝이는 초록잎 사이를 걷는 것이 특효약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친구가 나와 대화하는 걸 너무나 좋아합니다.

나와 얘기 나누며 수다를 떨다보면 통증을 잊게 만드는 좋은 호르몬이 마구 나온다며 환하게 웃으며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시간이 너무 좋아."

"너가 있어 너무 행복해."

 

친구의 그 말에 나도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그 친구의 통증이 모두 사라지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나와 함께하는 순간들을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그 친구를 위하여,

나도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위해 애쓰려고 합니다.

 

나도 마음이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면, 운동화를 신고 무작정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축축 늘어지게 하던 마음속 흙탕물이 빠지고 점점 가벼워지는 걸 느낍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늦은 나이에 눈빛만 봐도 서로를 이해해주는 친구를 가진 건 분명 축복입니다.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르지만, 다름을 인정하며 자신이 원하는 우정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예순해 가까운 긴 세월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강요와 억압속에 살아왔었습니다.

이제는 충분합니다.

우리는 성격도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고통의 크기와 무게를 달아보니 너무 비슷하고, 견디며 성장한 크기도 비슷해서,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를 향해 가는 길에도 서로 동행할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의 약효가 떨어질 때쯤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통증을 견디고 있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고통을 오롯이 견디는 모습을 바라만보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

 

나의 존경하는 친구를 위하여, 남은 생애동안

좋은 친구가 되어 곁에 있어주어야겠다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나도 너 때문에 행복하다, 말해주어야겠습니다.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 심리상담학 박사

*치유와 따뜻한 동행 www.kclat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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