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우울을 걷어내야 성숙이 옵니다 > 강지윤 치유칼럼

본문 바로가기

커뮤니티

강지윤 치유칼럼



홈  >  커뮤니티  >  강지윤 치유칼럼

무기력과 우울을 걷어내야 성숙이 옵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작성일16-07-12 11:05 조회4,889회 댓글0건

본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항상 뭔가에 갇혀 있는 느낌입니다. 남들 보기엔 게으름으로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기분에 사로 잡혀 있어요. 제 자신이 너무 무능력해 보여서 견딜 수 없어요. 저같이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만 들고... 이제는 제가 왜 사는 지도 모르겠어요....” 

삼십 대의 남성이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겨우 상담실을 찾아와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은, 놀랍게도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명문대를 나온 재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 늘 비관적이고 자기비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무기력증을 동반한 우울증으로 나타나 더욱 더 자신을 무능한 인간이라고 비하하는 생각 속에 빠지게 만들었고 우울증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객관적인 좋은 평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전 현직 부장판사 한 분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원하는 부와 명예를 다 가진 사람이 그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던지기까지 마음의 방황이 얼마나 극심했을지 우리가 다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판사까지 오르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며 공부에 매달렸을 지, 그 어려운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판사가 된 이후의 영광과 명예,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칭송과 부러움 등을 다 뒤로 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날렸습니다.  

소식자료에 의하면 그는 깊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울증은 그토록 치명적입니다. 자신의 일에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만드는 무기력증을 동반하고 자신의 삶을 완전히 놓아버려야 숨 쉴 수 있을 것 같은 답답함을 생성해 냅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판사라는 직업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토하거나 배설한 물건들을 치우는 쓰레기 청소부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할 정도로 모든 시각이 부정적으로 흐르게 됩니다.  

진짜 청소부의 직업을 가지신 분들 중에 자신의 일에 대해 자긍심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배설한 더러운 것들을 치워서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한 몫 하고 있다는 자긍심.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존재감을 형편없는 것으로 하락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판사와 쓰레기 청소부, 이것은 시선과 생각의 차이가 만든 사회적 편견의 직업적 우열일 뿐입니다. 자신을 쓰레기 청소부라고 생각하고 행복해 할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울의 정서는 한 인간의 사고를 바꾸어 놓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궁전에 살아도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궁전이 감옥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우울증이 소중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앓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한대의 블랙홀 같은 것이 지금도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집어삼킬 듯 노려보고 있습니다.  

우울증 속에서 긍정적이거나 밝은 미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우울은 자신의 존재가 존중받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기인하고 사랑의 결핍이 궁극적 원인입니다. 이 결핍감은 얼마나 질긴지 세월이 많이 흘러도 나이를 먹지 못하고 사랑 결핍의 어린아이로 고착시켜 놓습니다. 이 고착된 무의식적 사고가 무기력감과 무능감을 형성하여 열정과 에너지를 차단시켜 놓습니다.  

우울한 정서가 얼마나 묻어있는지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때때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우리 생애 속으로 쑤욱 고개를 들이밀 때를 경계해야 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추적해보면 아주 어린시절의 어떤 사건이 원인인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낮은 자존감이나 심한 열등감이 원인인 경우도 있습니다. 

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들은 자녀들의 학업성적에만 관심이 지대합니다. 성적이 부진하면 과외를 시키든지 학원을 보내지만 정작 그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지는 못합니다. 무기력증을 동반한 우울감이 내면에 흐르면 성적이 부진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간혹 자신의 마음을 이기고 좋은 성적을 받아 명문대학을 진학해도 결국 방황은 일어납니다. 그 시기가 조금 빨랐느냐 조금 늦어졌느냐의 차이일 뿐. 

삼십 대나 사십 대, 혹은 그 이후에 억눌러놓았던 우울감이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을 장악할 때면 더 힘이 듭니다. 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절망감이 피어오릅니다. 그것은 오랜 우울감으로 인해 성숙하지 못한 자아가 어린 아이처럼 보채기 때문입니다. 죽어야만 끝날 것 같은 암울한 저항감은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채 손에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발버둥치며 우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성숙으로 가는 길은 각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그 사람이 앓고 있는 심리적 병증에 따라 다르고, 각 사람이 가지고 온 기분과 감정에 따라 다르고, 각 사람의 결핍된 정서에 따라 다릅니다. 성숙을 향해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나의 성숙은 가족의 행복을 보장해 줍니다. 배우자의 성숙은 건강한 부부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고 행복하고 건강한 자녀를 양육하게 하는 자양분이 됩니다.  

무기력감에서 벗어나야 자신이 하는 일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기력감에서 벗어나면 자아의 성숙을 가져옵니다. 무기력감은 가벼운 우울증에서도 생깁니다. 삶에 덮이기 시작한 무기력한 시간들을 속히 걷어내지 않으면 무거운 우울증세로 진행됩니다. 무기력을 동반한 우울은 사람의 성숙을 방해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위력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디모데전서 4:15)”는 성경의 권면처럼 우리는 또다시 성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