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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의미없게 느껴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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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작성일21-09-07 17:07 조회2,1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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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사는 게 의미가 없어요."

 

우울증에 빠진 내담자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저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고 모든 일에 실패했어요. 앞으로도 절대 좋아지지 않을 거예요.'

 

우울증이라는 병명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심각한 우울증 환자들은 오히려 우울한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울증이기 때문이다. 

 

나는 살지 않는다.  잘 자라지도 않고, 그저 유지할 뿐, 존재하기에 감각들은 텅 비워진 채, 불행하게도 슬픔조차 없지. 

 

-페르난도 페소아,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중

 

수많은 색들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우울증은 슬픔, 고통, 우울, 절망 등의 강렬한 감정이 뒤섞여 검은색 외에는 다른 색들을 볼 수 없는 병이다. 

 


 

몇 년 전, 한 여성이 신변 정리를 다 해뒀다며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상담이 끝나면 죽을 거라고 예고했다. 

"마지막으로 상담을 받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요.."

 

그녀는 죽지 않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나와의 심리상담을 선택했다. 100분이라는 첫 상담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지 털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왜 죽을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며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그녀의 말이 설득이 아니라 죽지 않게 도와달라는 간절한 외침으로 들렸다. 나는 죽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이 공간에서 밝힐 수 없지만 누구라도 그녀가 겪은 고통을 경험한다면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00 씨가 너무 대단해요."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존경했고 칭찬했다. 늘 타인의 비난이 익숙했던 그녀는 그제야 꾹꾹 눌러놓았던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죽고 싶다는 말을 하면 주변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죽지 말고 살아야지.

-너보다 더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도 많아.

-죽는 게 그렇게 쉽냐?

-그런 말 그렇게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죽을 만큼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이해받기보다는 정신력이 약하다고 비난받는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이 고통이 다 끝나야만 자신이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박사님은 이런 고통 모르시죠?"

 

하지만 그녀의 말은 틀렸다. 누구에게나 고통은 있고 상담자로 앉아 있는 내게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있었다. 그 숱한 눈물이 없었다면 나는 이 일을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고통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깊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을까. 

 

공감은 단순히 슬픈 감정을 이해하거나 동요하는 게 아니라 '그 고통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상담자는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블랙홀 같은 고통에 빠진 내담자와 함께 그 고통을 겪어주는 사람이다.

 

나는 내게도 살아야 하는 이유보다 죽어야 할 이유가 훨씬 많은 날들이 있었다고 그녀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고통이 다 해결되고 아픈 마음이 다 치유되어야 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고통 중에도 행복할 수 있어요. 나도 그랬어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00 씨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죽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그녀에게 나는 일단 "오늘만 살아달라"라고 했다. 

 

심리치료를 받는 동안 '내일'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지금이 중요하다. 

내일이 되면 또 '오늘만 살아내기'를 하는 것이다. 

 

그녀는 상담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에 꾸준히 심리상담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우울증세가 호전되었다. 감사하게도 지금 그녀는 살아있다. 날 믿고 치료에 따라 준, 그리고 살아준 내담자들에게 나는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상담 한 번만에 자신을 고쳐달라고 말하는 내담자들도 간혹 있지만, 심리상담치료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한 번 심리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마법처럼 자존감이 올라가고 삶에 대한 의욕이 충만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에 강하게 이끌리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누구나 오늘을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심리상담은 오늘을 사는 힘을 얻게 하는 일이다. 

다른 어떤 거창한 의미나 이유는 없다. 왜 살아야 되느냐, 왜 행복해야 되느냐고 묻는 내담자에게 나는 당신이라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이 사는 게 가장 큰 의미다. 

당신이 먹고, 입고, 하는 크고 작은 일, 전부가 엄청난 의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보다 더 큰 의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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