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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불안과 코로나블루가 길어지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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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작성일20-05-15 13:37 조회2,1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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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엔 불안이 각양의 색채로 가라앉았다. 누군가에 대한 분노로, 혹은 누군가에 대한 혐오로, 스스로를 채근하며 애써 각자의 불안을 감추느라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창밖엔 봄비가 내리고 있다. 봄비가 지나면 새로운 계절이 오겠지. 그리고 이 시간들도 지나가겠지. 언젠가는 지나가겠지. 봄비가 내리자 길가엔 봄꽃들이 고운 색깔로 돋아나고 나무들의 머리엔 푸른 숱이 무성해졌다. 

계절은 변함없이 가고오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포만이 새롭게 일상에 내려앉았고, 자연스러운 시간은 덜컥거리며 고장난 시계처럼 우리를 위태롭고 불편하게 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랬다. 종말의 때가 가까워진거라고. 혹은 종말의 징조가 이미 시작된거라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종말을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은 본능이다. 개인의 종말, 나라의 종말, 세상의 종말, 이 모든 종말은 본능적인 공포를 부른다. 

만약 여기가 끝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두려움에 떨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공포에 갇히기만 해야 할까. 누구에게나 닥칠 개인의 종말은 시간차가 있을 뿐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인간 군상이 있다. 사기를 쳐서라도 돈을 착취하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들과 타인을 괴롭히며 자신의 안위를 추구하는 잔인한 인간들은 이 세상에 넘치고 넘친다. 

계속해서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며 타인의 행복을 짓밟고, 성범죄를 저지르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쾌락을 쫓아 살며, 고의로 누군가를 고통에 빠뜨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 끔찍한 인간 군상은 왜 이리도 사라지지 않는가. 아니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는걸까.  

수많은 범죄가 더 늘어나고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인간의 잔인성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떻게 나자신을 지키며 나의 일상을 살아갈까. 안톤 체홉은 ‘사람은 스스로 믿는 대로 된다’고 했다. 그러나 믿음의 사고가 부정적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 죽도록 애써도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잘 될 것이다'라는 말을 수천번 외쳐도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절망감은 자책감으로 귀결된다. 
나는 이야기해 주고 싶다. 어느 정도 불행하다 느껴도 괜찮다고, 모든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신이 실수를 잘 하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껴도 괜찮다고.
 
사람이니까 슬퍼해도 괜찮고 외로워도 괜찮다. 무서워해도 괜찮고 불행하다고 느껴도 괜찮다. 그래도 살아가면 된다. 거대한 목표를 세우지 말고 완벽한 성공을 바라지 말고 그냥, 살아가면 된다. 지금의 시대는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며, 살아있는 것 자체가 위대한 것이다. 섣부르게 목숨을 놔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누군가의 평가에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전 존재가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평가하는 그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비교대상인 그도 그늘과 어두움이 삶 속에 드리워져 있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거기서 거기다.
 
심리상담을 받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실패자라고 여긴다.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괜찮은 사람이고 자신만이 처참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자책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어쩌면 상담실에 오는 사람들은 가장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일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가식과 약간의 실수와 거짓말에 죽을만큼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타인의 잘못마저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고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타인으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되었으면서도 시간이 많이 흐르고나자 가해자를 잊어버리고 자기자신을 가해자로 지목하게 된 사람들이다. 그 모든 원통한 분노가 자기자신을 향해 날을 세우게 된 사람들이다.  

깊은 상처가 거듭되면 트라우마가 되듯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조금씩 모두의 트라우마가 되고 있다.이렇게 지독한 바이러스가 있을까. 투병 후 살아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코로나의 끔찍한 고통을 이야기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가슴 통증이 극에 달하고 고열과 통증이 밤새 진행되고 죽음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병상을 지키지도 손을 잡아주지도 못하는 고통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감염될 수도 있을텐데'하며 불안해 한다.  

넓은 카페 안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나누고 수다를 떨며 이 공포가 자신의 것이 아닌 듯 외면하지만 그들의 표정에 드리운 불안의 그림자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고난이 왜 하필이면 나에게 다가왔을까, 절규하며 신을 원망할 때도 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까지 끌어당겨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한다. 이 지독한 바이러스를 이길 약물이 속히 개발되어 일상이 평화롭기를 바란다.  

‘주여, 도와주소서!’ 이 절규에 가까운 기도가 내 영혼과 온몸 가득히 흐르고 있다. 그리고 믿는다. 이 기도와 염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 심리상담학 박사 
*치유와 따뜻한 동행 www.kclat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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