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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 이별, 그 슬픔의 한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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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작성일19-06-05 08:55 조회2,1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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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윤박사의 치유칼럼]  사별, 이별, 그 슬픔의 한가운데서



또다시 비극이 일어났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집단무의식에는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물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처럼 가라앉게 되었을 것 같다.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도 있다고 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물도 못 넘기다고 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슬픔이 온 세상에 가득한 지금의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사건을 보며 “배를 절대로 타지 말아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각자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시간 주름마다, 어디를 걸어가던 누구에게나 비극은 천둥처럼 갑자기 다가온다.

지상에서 완전히 피할 곳이 어디 있을까? 천국에 가는 날 동안 우리는 고통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게는 고통이 하나도 없어야해‘, 라는 이기적인 바람을 갖게 되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안 좋은 일이 나면, ‘저 사람은 뭔가 죄를 지어서 그럴거야.’라고 쉽게 예단한다.
예전에도 혹은 지금까지도 남편을 사별로 보낸 여성에게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며 욕을 한다. 병들어 죽었거나 사고로 죽은 남편의 죽음을 그 아내에게 돌렸다. 그래야 자신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상쇄하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세상의 악인들은 왜 이렇게도 오래 살고 있는가. 심지어 떵떵거리며 부유하게 사는 악인들도 많지 않은가. 잠깐 사는 이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악인에 대한 신의 진노는 어느 때 나타날 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 날이 올 것이다!

치유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상담자인 나를 통해 완전히 없애길 바란다.
치유가 백퍼센트 이루어져야 행복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 속에서도 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 깊은 상처가 70 혹은 80 퍼센트 정도 나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함께 해주며 기다림의 시간들을 상담자와 함께 하는 것이 심리상담이다.
그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상담실로 오는 것이다.

“열 번이나 상담 받았는데 왜 낫지 않는거예요?”라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
열번만에 나을 수 없는 큰 덩어리의 트라우마가 여러 개 무의식의 저변에 깔려 있어 그렇다. 어쩌면 3년 혹은 5년의 치유 기간이 흘러야 힘이 생길 것이다.
암수술을 하고도 옆으로 번진 암 세포가 다시 발견되고 오랫동안 경과를 지켜보지 않는가. 마음의 암도 똑 같다.

사별이나 이별로 인한 상처는 트라우마가 되기 쉽다.
단 한번의 사별로 어떤 이는 살아야할 모든 의욕을 상실하기도 한다. 너무나 사랑하던 배우자나 자녀의 죽음으로 인해 이별을 경험한다면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되는 트라우마로 새겨진다.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진듯한 트라우마.

강박장애가 심한 사람은 길을 가다 누가 찌를까봐,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날까봐, 자동차가 자신을 치고 갈까봐, 갑자기 숨이 멎을까봐…. 끝없이 불안해 한다.
불안해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지상에서의 삶 동안에 나한테만큼은 비극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런 비극적 사건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온다.

특별히 나만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고통 속에서도 이길 힘을 키우며 고통이 나를 성장케 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치유를 많이 이룬 사람은 고통이 하나도 없기를 바라지 않는다. 고통이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며 성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도 역시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더이상의 고통이 없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열다섯 해만 살고 생을 마감한 내 어린 동생이 수십년이 지난 오늘도 그립고 슬프고 아픈 걸 보면, 내게도 이별은 종류를 가리지않고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수년전 내가 고통과 슬픔 속에서 찾아갔던 다뉴브 강가에서 쓴 시가 있다. 마치 지금의 비극을 내다보기라도 하듯이, 나의 슬픔 속에서 이 시를 써서 다뉴브에 흘려 보냈었다.
이 시를 다시 읽어보며 슬픔 속에 있는 그분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애도하며 끝없이 끝없이 위로하고 싶다.


푸르고 아픈 다뉴브 강/강지윤

푸르고 아픈 다뉴브 강
깊은 심장에
내 눈물을 보태었습니다

푸른 다뉴브 강 길게
가로누워, 꿈같이 흐르던
시간의 저편에서
젖은 마음자락 떼내어
물살에 흩뿌렸습니다

그저 말없이, 받아주었던
이국의 강물이 고마워
마음에서 떼어낸 붉은 꽃잎 몇 장도
아낌없이 주고 왔습니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흔에
고여있는, 내 핏방울들
뚝, 뚝, 떨어져 붉은 노래가 되면

강가에서 우는 이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기를
푸른 다뉴브 강 밤물결
내 뒤로 끝없이
흘려보내며, 염원했습니다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치유와 따뜻한 동행 www.kclat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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