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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이루는 공감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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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작성일19-03-05 17:40 조회2,7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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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윤박사의 치유칼럼]  치유를 이루는 공감의 능력

예전에는 봄이 다가오면 따뜻하고 청명한 바람이 불었고, 겨우내 얼었던 마음이 녹으며 상쾌해지는 햇빛 아래 하염없이 걸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봄이 다가올수록 공기는 탁해지고 눈이 아프고 목이 아파 봄볕아래 걷기가 힘들어졌다.

눈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지만 여전히 아픈 이들의 마음을 놓지않고 따뜻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 치유의 길이리라.
아직 봄이 아니더라도, 봄이어도 숨도 쉬기 어려운 미세먼지 속에 갇혀 있을지라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치유되고 행복해 질 것이다.

치유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과 ‘공감’이다. 온 영혼과 온 힘을 다해 들어주는 치유적 경청이 없이는 공감이 따라오지 않는다. 경청이 있어도 공감이 없다면 치유는 멈춰버리고 아픈 그대로 평생 나아지지 않게 된다. 

공감은 영어로 ‘Empathy’다. 이 단어의 어원은 함께 느끼고 함께 아파한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 좀더 복잡한 어원의 유래를 따라가다보면, ‘상대방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지독한 고통을 겪는 그 사람의 고통 속으로 블랙홀처럼 함께 빨려들어가 그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같이 피 흘리고 같이 고통하는 것이 공감이다.

그래서 심리상담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상담자의 태도 중 하나가 공감이다. 공감이 변화와 치유 그리고 성장을 가져오는 이유는, 사람은 공감을 경험하면 자유함을 서서히 느끼게 되고 내면의 힘이 생겨 점점 강해지며 마음의 평안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공감을 받으면 이해받는 느낌이 들고 자신의 허둥대며 불안했던 마음의 안식처를 마련할 수 있다. 상처가 치유되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되며, 내면의 힘이 점점 생겨 올바른 인식과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깊은 치유가 일어나는 공감의 능력이 내담자의 소외감을 서서히 해소시켜주고 자신이 겪은 과거의 상처와 경험을 재해석하고 가치관과 세계관을 건강하게 수정할 수 있게 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공감과 동정을 혼동한다. 동정은 상대방에게 비참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게도 한다. 동정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커지게 한다. 그래서 치유가 깊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동정은 오히려 독이 된다.
동정은 자신을 상처받은 희생자로 낙인 찍어 더욱 늪에 빠지게도 한다. 더불어 수치심을 더욱 부추긴다.

그러나 공감은 깊은 대화를 통하여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힘이 있다. 또한 공감은 내담자와 상담자가 하나가 되게 만든다. 
정신분석에서는 내담자의 심리 내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경험 안에 상담자가 깊이 들어가 일시적으로 그대로 머물며, 내담자의 주관적인 경험을 탐색하여 그의 아픔의 파편들을 하나씩 파악하고 원인을 분석한다.
이때 공감은 상담자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고 내담자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리하여 내담자의 고통이 클수록 상담자의 고통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치료는 아무나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공감의 능력 없이 가볍게 접근하면 고통이 깊은 그 사람의 내부는 더욱 큰 고통으로 허우적거리게 된다.

언젠가 내가 “상담을 한다는 것은 생명을 나눠주는 일”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 상담을 하면서 내 생명의 일부가 내담자 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나 자신은 기진맥진하게 되는 현상을 종종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상담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상담을 현저하게 줄인 지금, 나는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그만큼 힘든 일이다.

그저 단순한 대화를 하는 것이 심리상담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극단적으로 아프지 않았던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 타인을 이해하거나 평가한다. 제발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규정하고 비판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것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소자를 실족하게 만드는 짓’이다.

로마서 12장에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이 있다. 사람은 너무 연약해서 자신의 아픔이 더 크게 보여 슬피 우는 사람에게 깊이 공감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 공감의 태도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에 닿아있다. 공감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것은 곧 죄다.

이제 얼마 후면 봄꽃이 피고 꽃잎이 흩날리며 향기로운 봄이 무르익을 것이다. 탁한 공기가 걷히고 청명한 봄 하늘 아래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길 기원한다. 고통의 블랙홀 속에서, 우는 사람과 함께 울며, 마음과 마음이 닿아 치유를 이루어내기를, 그리하여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치유와 따뜻한 동행 www.kclatc.com
*신간. 시공사 지식너머. [내가 정말 미치도록 싫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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